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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실력 없인 불가능해”…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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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양동화.

내 이름은 양동화. 32살이다. 난 돈 많은 백수가 꿈이다. 열심히 일해서 바짝 벌고 편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일 것!

국제 장애인기능 올림픽 대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시작된 국제 대회인데, 나는 올해 3D 캐드 (CAD)  분야에 출전했고, 내년에도 또 출전할 것이다. (캐드 (CAD) : 컴퓨터를 활용한 설계 문서화 기술. 컴퓨터로 제품 밑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음.)

19살 때…  회고… 내가 처음부터 캐드에 흥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19살,  내 다리에 암이 생겼다. 8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면 남들과 다른 학창시절을 보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앞으로 꾸준하게 먹고 살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5년 전,  일산 직업능력개발원 기계과에 입학했다.

입학 후에야 나는,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이 [전국대회] 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높은 상금에 호기심을 느꼈다. 이왕 공부하는 바에야 대회를 목표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캐드 공부를 한 지  8개월 쯤 되었을 때. 나는 선생님에게 대회에 참가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반신반의했다.

“ 대회는 실무와 엄연히 다르다. 이른 대회 참여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데? “ 그리고 올림픽 대회에 출전하려면 지역 예선과 전국대회를 거쳐서 국가대표로 선발 되어야 해. 실력이 없으면 전혀 불가능한 거야. 지금은 공부에 더 집중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맘이 급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난 8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지 않았는가?

남들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면서 다 배우는 것이었다. 나는 1년 안에 소화할 것이라고 스스로 굳게 다짐하면서 미친듯이 공부와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맘은 먹었지만 국내 대회 준비조차 순조롭지 않았다. 아픈 다리 때문에 발목 잡히기가 일수였다. 어느 날은 수술 후 넣은 인공관절에 염증이 생겼다. 중요한 지방 대회 출전을 앞두고 염증이 재발하기도 했다. 한 번은 병원에 입원했을 때, 국내 대회가 있었는데 환자복을 벗고 나와 택시를 타고 극구 참여했다.

결국 나는 지방대회와 전국대회를 1년 만에 휩쓸었다. 이제 국제대회만 남았다. 4년마다 열리는 국제대회는 2016년 3월에 개최될 터였다. 2012년 전국대회를 마치고 실무를 아우르기 위해 취업을 했다. 3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국제 장애인올림픽 대회가 개최된다는 공고를 접하게 되었다. 국제대회 선발 전 일정이 다가오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국내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를 때는 2D 캐드였다. 그런데 국제대회는 3D 분야로 바뀌어 있었다.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난 후, 국제대회 전 3개월은 독학으로, 나머지 3개월은 장애인고용 공단에 모여 합동 훈련을 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공부하고, 연습하고, 검토하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잠을 강제로 쫓으며 공부했다. 주말은 물론 공휴일까지 반납하며 연습에 매진했다.

그렇게 해서 출전하게 된 꿈의 2016 국제 장애인 올림픽 대회. 전 세계 35개국 선수들이 프랑스 보르도에 집결했다.

그런데 국내 대회와는 차원이 달랐다! 문제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려웠다. 대회는 총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첫날은 조립도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부품만 주고, 이 부품을 조립해서 완성된 형태를 만들어야 했다. 새로운 과제, 새로운 방식이라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선수들도 헤매는 것 같았다.

둘째 날 문제는 첫째 날과 반대였다. 조립도가 주어지고 특정 부분을 수정하라는 문제. 정해진 가공법에 따라 설비변경을 하란 얘기다. 난이도가 더 올라간 셈! 하지만 나는 연습량에는 자신 있었다. 내 두 손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나는 최고 득점으로 1위를 했다. 대회 첫 출전 만에 대단한 쾌거다! 받은 상금 5천만원. 금메달을 수상해 이제 연금도 나온다. 대한민국은 금 14개, 은 8개, 동 2개로 2위 대만,  3위 중국을 제치고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도전은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을, 장애도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 번 실감했다.

4년 뒤 국제 대회에서는 지금보다 더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그리고 당황하지 않고 더 숙달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고민하며 준비할 것이다. 또한 지금 경험한 것을 살려 후배들에게 좋은 길을 안내해 주고 싶다. 블로터 x 체인지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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